• [한희철 목사] 아름다운 나라
  • 00.09.17 21: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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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다녀온 여행이었습니다. 하는 일과 걷는 길이 다르고 나이도 다르지만 한 마을에서 이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가는 일은 즐겁고도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상하지요, 많은 다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편하고 좋은 친구처럼 여겨지니 말이지요. 그게 이웃인가 봅니다.
마을 사람들은 지난 일년 동안 한달에 만원씩 돈을 모아 여행을 준비했고, 동해를 다녀온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는 남해를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바쁜 일철이 오기전, 우리나라 곳곳을 둘러보는 이 여행을 사정이 허락한다면 해마다 이어가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남쪽의 한쪽 끝 여수에 도착한 우리는 하룻밤을 그곳에서 머물며 몇 몇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마침 그곳에 살고 있는 학교 후배가 이틀 동안 우리의 길을 안내해 주어 더 좋은 구경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모로 남녘의 푸근한 정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여행길이었습니다.
일제시대 때 강제노역으로 뚫었다는 바위굴을 지날 땐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약 1km에 달하는 긴 굴이었습니다. 별다른 장비의 도움 없이 바위뿐인 산 속을 징과 망치로 뚫었다니 수많은 희생자가 생긴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쪼아낸 바위 하나 하나에 담겨있을 땀과 눈물, 희생당한 이들의 억울한 넋이 굴 속 가득함을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느껴야 했습니다.
백야골에 있는 봉수대를 찾은 일도 즐거운 기억으로 오래 남을 듯 싶습니다. 봉수대는 봉화를 피워 올리던 곳으로 남해에서는 돌산섬에 이어 두번째로 봉화를 받던 봉우리입니다. 통신 수단이 따로 없던 시절,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로 신호를 보내 때마다의 상황을 알렸다 합니다. 평상시에는 한번, 적이 나타나면 두번, 가까이 다가오면 세번, 접전하면 네번, 상륙하면 다섯번,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알렸던 것이지요. 조선왕조실록(성종9년 3월 1일)에는 백야봉수였던 신명회가 후망을 조심하지 않아 적선이 오는 것을 몰라 장 1백대를 맞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하니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봉화산을 오를 때 우리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부신 은물결 속에 섬과 바다가 어울린 것도 우리의 눈을 한참이나 붙들기에 충분했지만, 그 아름다운 바닷가에 또 하나의 기막힌 아름다움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큰 날개를 활짝 편 새처럼 절벽, 바다, 섬, 그리고 바람이 어울린 하늘로 날아오른 사람들은 유유히 하늘을 날고 있었습니다. 바라보기만 해도 속이 확 트이는데 하늘로 날아오른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짐작이 안 될 지경이었습니다.
눈여겨보면 이 강산 어디라고 아픔과 아름다움이 절절하게 녹아있지 않은 곳이 따로 있겠습니까?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기며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 그것이 우리가 누려야 할 아름다운 삶이 아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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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호 (당시 4 세)
최진호 (당시 4 세)
*성 별: 남
*신 장: 101cm
*두 발: 짧은머리
*상 의: -
*하 의: 청바지
*신 발: 검정색구두
*신체특징: 귀가 당나귀귀처럼 크고, 쌍거풀 있으며, 왼쪽볼에 손톱자국 있음
*발생일자: 2000년 5월 7일
*발생장소: 경기도 안산시 안산4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