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섭 시인] ‘헬프 미 아줌마’의 나눔
  • 07.06.07 10: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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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 보부상(褓負商)의 마지막 영위(領位:최고 지도자) 김재련 옹을 부여군 홍산 자택에서 만난 적이 있다. 당시 85세인 그는 전국의 장터를 떠돌았던 60여년의 고달픈 여정에 지친 듯 병석에 누워있었다. 며느리와 아들의 도움을 통해 취재를 하면서 생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충청도 일원을 떠돌며 주단, 포목, 건어물을 취급했던 그는 호구지책을 위한 장돌림이 아니라 역마살이 낀 방랑벽 때문이라고 했다. 조치원 농업실습학교를 나와 서울에서 유학한 인텔리로 보부상 조직인 상무사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계기가 됐다.
보부상들은 임진왜란, 병조호란 때 막강한 힘을 보여주었고, 일제 강점기 때는 별도의 조직을 구성하여 억압통치에 저항하는 애국심을 발휘하기도 했다. 1930년대까지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췄던 보부상 조직은 70년대까지 명맥을 유지했고, 김 옹은 1963년 마지막 영위에 올랐다. 보부상들의 호적부와 같은 청금록, 보부상들의 내력이 적힌 완문, 영위인 등 그가 물려받은 유물은 민속자료 제30호로 지정되어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봇짐장수인 보상(褓商)은 보자기에 비교적 고가물품인 옷감, 화장품, 금은보석 등을 싸 가지고 다니며 판매했다. 등짐장수인 부상(負商)은 지게에다 일용상품인 연초, 토기, 목기, 자리 등을 지고 다니며 팔았던 세일즈맨이다.
최근 대전에서 ‘헬프 미’ 아줌마로 널리 알려진 행상인 신초지 씨가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 30만원과 양말 1000켤레를 전달했다는 훈훈한 소식을 듣고 보부상들의 과거를 되돌아봤다. 옛 보부상들이 나라가 환란에 처할 때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듯, ‘천사표 봇짐장수’의 끝없는 나눔이 큰 울림을 준다.
신 씨의 ‘나눔의 역사’는 40년째 이어지고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대전시내 관공서와 학교 등을 돌며 “헬프 미(Help Me)”를 외치면서 양말과 칫솔, 스타킹, 넥타이 등을 팔아 번 돈 대부분을 고아원, 양로원 등 불우이웃 돕기에 썼다.
그녀가 관공서에 들어가도 ‘잡상인’ 취급을 받지 않았던 것도 아름다움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도움을 준 사람들은 줄잡아 6만 여 명에 10억 원이 넘는다니 놀랍다. 그 같은 공로로 수많은 표창과 함께 1998년에는 국민훈장석류장을 받았다.
경찰 간부인 아버지와 대학교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결혼에 실패한 뒤 고향인 경북 고령을 떠나 대전에 정착했다. 2평 짜리 월세 방에 살면서도 13년 전부터 10대 미혼모가 버린 갓난아이를 데려다 사랑으로 키운다.
5년 전 자궁암 판정을 받고 서울에 입원했으나 치료비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각 급 행정기관 직원들의 도움으로 퇴원하여 다시 행상과 선행의 현장으로 돌아온 ‘헬프 미 아줌마’는 이제 66세의 ‘헬프 미 할머니’로 변했지만 나눔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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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주 (당시2세)
박민주 (당시2세)
성 별: 여
신 장: "80" cm
두 발: "파마기 있는 단발머리"
상 의: "반팔 흰색 티셔츠"
하 의: "청치마"
신 발: "검정 단화"
신체특징: "머리 우측 속에 팥알만한 붉은 점 있음. "
발생일자: 5/5/2002
발생장소: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동물원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