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판권 교수] 나무와 가장자리의 삶
  • 17.12.11 11:4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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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자리는 변방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방을 선호하지 않는다. 변방은 불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중앙에 머물길 바란다. 우리나라의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이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낸다”는 속담은 중앙 중심의 사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은 이 같은 사고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그래서 지방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서울로 진출하기 위해 무척 노력한다. 
역사적으로 중앙과 변방의 관계는 역동적이었다. 왕조의 변천사를 보면 자주 변방에서 새로운 왕조가 탄생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중앙의 왕조는 존재하지 않았다. 변방의 주인공들은 살아남기 위해 남다른 발상과 노력으로 꿈을 실현했다. 변방에서 성공한 왕조는 또다시 변방에서 성장하는 세력에 의해 자주 멸망했다. 근대 이후 우리나라도 왕조의 변천처럼 중앙과 변방의 경계가 상당히 모호했다. 그래서 개천에서 용이 탄생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앙과 지방의 차이는 많은 문제를 낳아 큰 사회문제로 부상한 지 오래다. 중앙과 지방의 문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양자 간의 격차가 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 문제는 단순히 권력의 차원이 아니라 삶의 영역까지 큰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중앙과 변방의 문제가 가변적이지 않고 고정적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경기 이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중앙지향적인 삶을 한층 부추기고 있다. 
나무에게는 가장자리의 삶이 없다. 나무는 모두 중앙의 삶이다. 나무의 이러한 삶은 결코 다른 존재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기 때문에 가능하다. 인간이 중앙 중심의 삶을 지향하는 것도 스스로 가장자리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삶 자체는 어떤 경우에도 중앙과 가장자리를 구분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그렇게 구분하는 것은 삶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 때문이다. 경제 수준은 중앙과 가장자리의 삶에서 중요한 기준이 아니다. 삶은 경제 수준으로만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말과 겨울은 삶의 가치를 고민하게 한다. 나는 나뭇잎의 가장자리를 즐겨 본다. 나뭇잎의 가장자리를 보면서 나무의 삶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뭇잎의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다. 나뭇잎의 톱니는 나무의 특성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다. 예컨대 느릅나뭇과의 느릅나무, 느티나무, 팽나무의 경우 모두 잎에 톱니가 있지만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특히 팽나무는 느릅나무와 느티나무와 상당히 다른 톱니 모양이다. 이처럼 잎의 가장자리는 나무의 특성에 불과하다. 인간의 삶도 나무처럼 자신만의 특성대로 살아가는 데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몸 중에 가장자리가 없듯이, 당당한 삶은 가장자리를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이 같은 삶의 철학은 찬바람을 거뜬히 물리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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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주 (당시2세)
박민주 (당시2세)
성 별: 여
신 장: "80" cm
두 발: "파마기 있는 단발머리"
상 의: "반팔 흰색 티셔츠"
하 의: "청치마"
신 발: "검정 단화"
신체특징: "머리 우측 속에 팥알만한 붉은 점 있음. "
발생일자: 5/5/2002
발생장소: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동물원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