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섭 시인] 누란의 위기
  • 17.01.06 11: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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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丁酉年) 첫날, 닭 울음 대신 알람 소리에 깨어 해돋이를 보러 나섰다. 집에서 멀지 않은 매봉산이다.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시간인데도 아이들을 동반한 해맞이 인파가 길게 이어진다. 엄마의 손을 잡고 가는 아이에게 물었다. “몇 살이야?” “여섯 살이요” “무슨 소망 빌 거야?” “…” 쑥스러워하며 대답을 하지 않는다. 
들머리 생태공원엔 무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광장에 마련된 포토존에서는 닭 캐릭터 복장과 어깨동무를 하거나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 옆 부스에선 두 분의 역술인이 토정비결을 무료로 봐준다. 
평소 트레킹을 나오면 마시는 약수로 목을 축인다. 물맛이 상큼하다. 테니스장에서 핫팩과 소망 풍선을 나눠준다. 떡국을 준비하는 부녀회원들의 손길이 바쁘다. 매봉산 정상 부근은 인파로 빼곡하다. 사물놀이패가 풍악을 울리며 신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축시 낭송, 국회의원과 구청장 등의 새해 소망과 덕담이 이어진다. 
일출 예정시간이 지나도 구름과 짙은 안개로 해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테너가 부르는 ‘오 솔레 미오(O Sole Mio)’를 들으며 마음속 해를 떠올린다. 가족 모두 건강하기를 기원했다. 남성중창단 공연, 소망을 적은 풍선 날리기, 소망 함성 지르기를 끝으로 ‘해맞이 행사’는 해 없이 끝났다. 
닭은 십이지의 열 번째 동물이자 유일하게 날개가 달린 동물이다. 조상들은 새벽을 알리는 닭을 빛의 전령,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여겼다. 횃대에서 목을 뽑고 힘차게 우는 청회색 빛 닭 울음소리는 시계가 귀하던 시절의 알람이었다. 농부들은 잠자리를 털고 들녘으로 나갔다. 식전 일은 능률이 높았다. 나이 들수록 병치레 하지 않으려면 부지런을 피워야겠다. 닭은 가족애가 두텁다. 쫑쫑쫑 따라나서는 병아리를 거느리고 텃밭을 누비며 벌레와 낱알을 주워 먹는다. 적이 나타나면 날개를 빳빳하게 펴고 발톱을 날카롭게 곧추세운다. 볕살 두터운 곳에서 병아리를 품고 해바라기도 한다. 해가 떨어지면 어미 닭은 싸리로 엮은 원추형 닭장으로 들어갔다. 평화로운 풍경이 세월의 강 너머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어린 시절 계란은 귀한 반찬이다. 닭고기는 귀한 손님이 와야 먹을 수 있었다. 씨암탉도 백년손님 사위 앞에선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다. 삶아 먹고, 볶아 먹고, 튀겨 먹는 것도 모자라 똥집(모래주머니)과 닭다리까지 요리해 먹는다. 닭갈비마저 버리기 아까워 ‘계륵(鷄肋) 타령’을 하면서도 닭에게 미안하거나 고맙다는 생각을 안 하니 염치가 없다. 채우려 하기 보다 비우려는데 익숙해져야 “염치없다”소리를 듣지 않는다. 
행운을 불러오는 붉은 닭의 해라지만 곳곳이 갈등과 대결, 혼돈의 지뢰밭이다. 경제 또한 초 불확실성 시대로 누란(累卵)의 위기다. 닭은 붉은 볏의 문(文)과 날카로운 발톱의 무(武)를 겸비하고, 닭싸움을 할 때 물러서지 않는 용(勇)과 모이를 나눠 먹는 인(仁)의 품성과 시간을 알리는 신(信)을 고루 갖췄다. 닭의 다섯 가지 덕목을 올곧게 실천하여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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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빈 (당시 2 세)
유채빈 (당시 2 세)
* 성 별: 여
* 신 장: 90cm
* 두 발: 단발형
* 상 의: 분홍색 스웨터
* 하 의: 흰색 바지
* 신 발: 밤색 구두
* 신체특징: 왼쪽 손등에 화상자국, 보조개 있음
* 발생일자: 2003년 11월 22일
* 발생장소: 충남 공주시 신관동 시외버스터미널